류현경 감독의 첫 장편 실험작, ‘고백하지마’ — 대본 없는 즉흥의 순간이 만든 관계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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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경 감독의 영화 ‘고백하지마’는 2024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실험적인 장편 영화다. 

배우 류현경이 연출, 각본, 주연을 모두 맡은 이 작품은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말 그대로 ‘순간의 기록’에 가까운 영화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순간을 정성스럽게 담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말하며, 

기존 상업영화 제작 시스템과 달리 우연과 자연스러움을 중심에 두었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한 편의 촬영 현장에서 시작된다. 

주연 배우 충길(김충길)과 현경(류현경)이 함께 찍은 영화의 촬영이 끝난 뒤, 

뒤풀이 다음 날 충길이 현경에게 고백을 한다. 

하지만 현경은 그 고백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묘한 어색함이 흐른다. 

이후 3개월 뒤, 두 사람은 각각의 이유로 부산을 찾게 되고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겨울의 부산 바다와 낡은 라이브 카페가 배경으로 등장하며, 

이 재회는 이전의 고백이 남긴 감정의 흔적을 다시 일깨운다.

줄거리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속에서 펼쳐지는 감정선은 매우 세밀하다. 

‘고백’이라는 단어가 가진 익숙한 로맨스의 문법을 완전히 비껴가며, 

오히려 그 이후의 정서적 잔여와 관계의 변화를 깊이 들여다본다. 

 

영화는 세 구간으로 나뉜다. 

첫째, 촬영 현장의 뒤풀이 장면. 

둘째, 고백 이후의 미묘한 거리감. 

셋째, 3개월 뒤의 부산 재회.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배우들의 즉흥 대화로 흘러간다.

류현경 감독은 “대본이 없는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밝힌다. 

그동안 배우로서 수많은 작품에 참여해온 그녀는, 

이번만큼은 ‘준비된 연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순간’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전엔 준비가 완벽해야 안심이 됐지만, 이번엔 틀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갔다.” 

이런 태도가 영화의 자유로운 호흡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현장에서 김충길 배우가 즉흥적으로 고백을 했고, 

그 장면이 영화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비하인드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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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부산을 비롯한 실제 거리, 카페, 바닷가에서 진행됐다.

겨울의 공기, 조용한 거리, 바닷바람이 영화의 정서를 지배한다. 

대부분의 장면은 핸드헬드로 촬영되어 다큐멘터리처럼 흔들리고, 

조명이 거의 없는 자연광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대사보다는 ‘침묵의 길이’가 감정을 이끌어간다. 

한 장면에서 두 사람이 함께 걷는 부산 바닷가의 롱테이크는 

고백의 여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퀀스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영화가 연출의 결과물이 아니라, 기록의 과정일 수 있다”는 걸 증명해보였다. 

대본이 없는 대신, 그날의 날씨와 배우의 기분,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까지도 영화의 일부가 된다. 

“찍지 않으면 사라질 순간들, 그래서 더 찍어야 했다.” 

그녀의 말처럼, <고백하지마>는 일상 속 감정의 흔적을 잡아두려는 시도다. 

이는 배우이자 창작자로서 류현경이 새롭게 찾은 ‘관찰자의 시선’이다.

영화의 미학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즉흥적인 대화는 때로는 더듬거리지만, 그 어색함이 오히려 진짜 감정처럼 다가온다. 

관객들은 인물의 표정보다 말 사이의 공백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낸다. 

“모든 것이 투명하고 솔직해서 미소가 난다”는 관객평처럼, 이 영화는 감정의 투명도를 높인 작품이다. 

반면 일부 관객은 “심오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가볍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벼움’이야말로 영화의 본질이기도 하다. 무게감보다 ‘살아있는 느낌’을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또 다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찍기 전에 너무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지나고 나면 그 시간들이 아깝더라고요. 

지금은 그냥 찍어요. 그게 이 영화의 출발이었죠.” 

이런 발언은 <고백하지마>가 단지 한 편의 독립영화가 아니라, 

‘창작자의 태도’를 보여주는 선언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녀에게 영화는 이제 준비된 예술이 아니라, 감정의 즉시적 표현이다.

 

김충길 배우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다. 

류현경은 “그는 자신만의 리듬이 있고, 즉흥에 강한 배우다. 

그 덕분에 영화가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현장에서 갑자기 고백을 하며 장면을 만들어냈고, 그 장면이 영화의 핵심이 되었다. 

이처럼 <고백하지마>는 ‘의도된 우연’을 영화적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관객은 감독이 계획하지 않은 감정의 순간들을 보며, 영화가 아닌 현실을 엿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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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반응도 흥미롭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첫 상영 당시, 객석에서는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감독은 “내가 웃는 장면에서 관객이 같은 타이밍에 웃어줘서 신기했다”고 말했다. 

독립영화가 주는 무거운 이미지 대신, 이 영화는 훨씬 가볍고 따뜻한 분위기를 전한다. 

투명한 공기, 웃음 섞인 대화, 고백의 여운이 뒤섞이며, 보는 사람에게 미묘한 따뜻함을 남긴다.

작품을 해석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경계’다. 

영화는 배우와 캐릭터, 현실과 허구, 감독과 피사체의 경계를 흐린다. 

류현경은 자신이 만든 인물 ‘현경’을 연기하면서 동시에 그 인물을 관찰한다. 

이중의 시선 속에서 영화는 스스로를 해체한다. 

“누가 연기하고 있고, 누가 관찰당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이 실험은 독립영화가 가진 유연성과 맞닿아 있다.

‘고백하지마’는 또한 사랑과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특별하다. 

대부분의 로맨스 영화가 ‘고백 전’을 다룬다면, 이 영화는 ‘고백 후’를 다룬다. 

고백 이후의 어색함, 그 이후의 거리감, 다시 마주칠 때의 복잡한 감정.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누구나 경험하지만, 말로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의 틈을 포착한다. 

류현경은 그 틈을 카메라로 기록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화려한 이야기보다 ‘기분의 영화’에 가깝다.

기술적으로 보면, 영화는 작은 규모로 제작되었다. 

촬영, 조명, 편집 모두 최소 인원으로 진행되었으며, 감독 자신이 편집에도 직접 참여했다. 

음악은 최혁이 담당했고, 촬영은 김명준이 맡았다. 

카메라워크는 손맛이 강하고, 미세한 흔들림이 남아 있어 ‘관찰하는 시선’의 리얼리티를 강화한다. 

부산의 바닷가, 좁은 골목, 겨울빛이 들어오는 카페의 자연광이 인물의 감정선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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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단정적인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고백은 사건이 아니라 ‘시간의 한 지점’이다. 

그 이후 인물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고백의 파동이 남긴 여운이 관객의 마음에 번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멀어지며 걸어가는 부산의 겨울 바다. 

그 장면이 주는 감정은 명확한 해답이 아니라, ‘이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결국 ‘고백하지마’는 한 여배우의 실험이자, 한 인간의 감정 실험이다.

대본 없이, 예측 없이, 우연과 순간에 자신을 맡긴 결과물이자, 영화가 여전히 ‘기록의 예술’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류현경은 배우에서 감독으로 넘어가며,

자신이 느끼는 현실의 온도를 스스로 재단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