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리뷰, 여성 로맨스와 우정 사이의 경계

 

나는 은중과 상연을 넷플릭스로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김고은과 박지현이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는 단순한 우정극도, 흔한 멜로드라마도 아니었다. 

두 여자의 관계가 어떤 이름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감정으로 얽혀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다. 

나는 보면서 "이게 우정일까, 사랑일까, 아니면 증오와 동경이 섞인 복잡한 감정일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됐다.  

내가 특히 떠올린 장면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작품 ‘정지 에너지’였다. 

한 사람은 활시위를 잡고, 한 사람은 화살 끝을 붙잡은 채 서로를 향해 마주 선 작품인데, 

은중과 상연의 관계가 바로 그 모습 같았다. 

서로를 향한 화살을 끝내 쏘지 않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긴장감. 

나는 이 장면이 두 사람의 감정을 완벽히 설명해준다고 느꼈다.

줄거리를 따라가며 나는 두 인물의 삶을 함께 걸었다.

은중은 아버지 없이 가난 속에서 가족을 돌보며 자라온 인물이다.

담백하면서도 단단하고, 때로는 상연을 질투하고 미워하면서도 결국엔 떠나지 못한다.

상연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늘 불안에 시달린다.

부모와의 관계, 오빠의 죽음, 끊임없는 자격지심이 그녀를 흔든다.

나는 상연을 보면서 겉으로는 모든 걸 가진 것 같아도 속으로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사람의 초상을 떠올렸다.

은중과 상연의 관계는 이렇게 균열과 집착 속에서도 결국 서로에게 돌아오는 불가피한 인연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우정과 사랑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가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친구라 부를 수 있지만, 동시에 그 감정은 우정을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내가 느끼기엔 이건 분명 동성애적 코드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제작진이 노골적으로 그것을 드러내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이건 백합물일까, 레즈물일까, 아니면 그냥 워맨스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아마도 정답은 시청자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듯하다.

연출 방식도 인상 깊었다. 나는 특히 침묵이 강하게 다가왔다. 

다른 드라마였다면 음악으로 분위기를 채웠을 순간들을 은중과 상연은 과감히 비워둔다. 

그 대신 배우들의 표정과 시선, 그리고 대사 하나하나가 모든 감정을 설명했다. 

나는 이 미니멀한 연출이 오히려 감정을 더 크게 울린다고 느꼈다. 

때로는 대사보다 침묵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간이 있었고, 나는 그 장면들을 오래 기억하게 됐다.

각본과 대사도 좋았다. 나는 어린 시절의 대화가 특히 마음에 남았다. 

그 시절만의 말투와 분위기가 너무 잘 살아 있어서 마치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단단해서 극이 흔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요즘 세상에 이런 15부작 드라마가 가능할까?’ 싶었는데, 

막상 보니 회차가 진행될수록 끝나가는 게 아쉬워서 더 천천히 곱씹으며 보고 싶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나는 큰 여운을 느꼈다. 두 사람은 결국 모든 상처를 다 치유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서로를 인정하고 마지막 위로를 건네는 모습에서 묘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화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삶의 끝에서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얻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인간의 감정은 단순히 이름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정이라 해도 맞고, 사랑이라 해도 맞고, 증오라 해도 맞다. 

감정은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은중과 상연을 보고 나서 한동안 내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됐다. 

내가 누군가에게 느끼는 감정도 단순하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은중과 상연은 나에게 단순한 드라마 이상의 경험이었다. 

여성 두 인물이 주체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고, 그 관계가 흔들리고 무너지고 

다시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깊은 울림이었다. 

나는 이 작품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이 드라마가 레즈물이냐, 백합물이냐, 워맨스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건 각자 느낀 감정이 정답이다.” 

내겐 이 작품이 그만큼 애매하고, 동시에 그만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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