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추천]빛의 설계자들 – 영화의 그림자를 설계한 사람들
누구나 한 번쯤은 잊히지 않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장면은 강렬한 대사도, 탁월한 연기도, 스토리의 반전도 아닌 ‘빛’으로 각인된다. 어두운 터널 속 한 줄기 빛, 창밖으로 쏟아지는 해질녘의 붉은 광선, 인물의 눈동자에 반사되는 희미한 반짝임. 이처럼 '빛'은 단지 촬영의 수단이 아니라, 영화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정서다.
『빛의 설계자들: 홍경표와 정정훈 촬영감독을 기록하다』는 바로 그 빛을 설계한 두 사람—홍경표와 정정훈—을 중심으로, 한국영화의 영상미학을 깊이 있게 조명한 책이다. 이 글에서는 해당 책의 구조, 인터뷰 방식, 독자적 가치, 그리고 영상 예술을 기록하는 방식의 전환점으로서의 의미를 상세하게 분석한다. 비전공 영상쟁이인 나에게 이런 책은 늘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채워준다.
1. 책의 기획 의도와 배경
이 책은 영화 전문 기자 김성훈이 오랜 기간 쌓아온 취재 기반의 인터뷰와 기사, 현장 기록을 바탕으로 두 촬영감독의 작품 세계를 해부하듯 풀어낸 에세이이다. 저자는 단순히 영화 정보나 기술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설계하는 ‘사람’에 집중한다.
촬영감독은 흔히 “감독의 시각을 영상으로 구현해주는 사람”이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영화를 함께 ‘만드는’ 동반자다. 감독이 이야기의 큰 구조를 짜는 작곡가라면, 촬영감독은 그 악보를 현장에서 조율하고 해석하는 지휘자와도 같다. 이 책은 그 오해받기 쉬운 직업을 조명하며, 그동안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던 촬영감독의 미학과 철학을 부각시킨다.
2. 두 명의 ‘빛의 설계자’
홍경표와 정정훈, 이 둘은 전혀 다른 경로를 거쳐 한국영화사의 가장 중요한 영상들을 만들어왔다. 그들의 스타일, 성장 배경, 협업 방식, 현장에서의 태도는 대조적이지만, 빛과 그림자를 통해 인물을, 공간을, 시간의 흐름까지 설계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닮아있다.
- 홍경표는 영상과 감정의 ‘물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촬영감독이다. 『살인의 추억』,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이어지는 그의 작업에서는, 인물과 세계의 경계를 흐리며 관객의 정서를 장악하는 ‘현장의 설계자’라는 느낌을 준다. 특히 『기생충』에서는 지하실과 고급 주택의 극단적 공간 대비를 조명과 렌즈 톤, 색온도로 명확히 분리하면서도, 인물 간의 감정 흐름은 유려하게 이어지게 만드는 정밀한 계산이 돋보인다.
- 정정훈은 스타일리시하고 회화적인 조명을 설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찬욱 감독과의 콤비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올드보이』의 붉은 조명, 『스토커』의 고전주의적 구도, 『아가씨』의 부드러운 필름 톤 등, 그의 영상은 단순히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정정훈은 조명과 프레이밍으로 이야기의 서사를 확장시키는 데에 능하다.
두 사람은 모두 ‘빛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며, 이 책은 그러한 이야기를 카메라 뒤에서 어떻게 설계해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3. 기술 너머의 철학: 영화 촬영은 무엇을 담는가?
『빛의 설계자들』은 단순히 기술적 스펙이나 장비 리스트를 나열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을 어떻게 ‘이야기’로 번역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저자는 인터뷰 중간중간에 “왜 이 구도를 선택했는가?”, “왜 이 조도와 톤으로 촬영했는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촬영감독이 단순히 디지털 입력값을 조절하는 테크니션이 아니라, 이야기의 정서를 완성하는 ‘예술가’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홍경표는 『살인의 추억』 당시 촬영 기간 내내 흐린 날만 골라서 야외 장면을 찍었다. ‘미결 사건’이라는 주제의 흐릿한 정서를 시각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다. 반면 정정훈은 『아가씨』에서 의도적으로 피사체를 한 프레임의 정중앙에 배치하면서도, 주변 조명으로 리드미컬한 톤을 만들며 인물의 고립과 억압을 동시에 표현했다.
그 모든 장면 뒤에는 “이야기를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라는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4. 현장의 공기까지 담긴 기록
책의 미덕 중 하나는, 단순한 인터뷰나 평가를 넘어, 촬영 현장의 온도와 긴장감까지도 담아냈다는 점이다. 정정훈이 『아가씨』 현장에서 박찬욱 감독과 함께 구도에 대해 한 치의 양보 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장면, 홍경표가 『기생충』 세트장의 좁은 공간에서 렌즈 교체를 반복하며 최적의 구도를 찾는 순간—이 모든 기록은 독자가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5. 누구를 위한 책인가?
- 영화학도 및 영상 전공자 : 촬영 수업에서는 들을 수 없는 실제 현장 중심의 미학적 해설이 담겨 있다.
- 영상 제작자 및 크리에이터 : 조명과 촬영, 색보정 등 영상 전반에 걸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 일반 영화 팬 : 『기생충』이나 『아가씨』의 영상미를 좋아했던 독자라면, 왜 그런 화면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된다.
6. 촬영감독이 곧 저자다
이 책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촬영감독이 비로소 하나의 ‘기록될 가치 있는 창작자’로 다뤄진다는 점이다. 영화 평론은 대체로 감독, 배우, 혹은 각본가에 집중되어 있었고, 촬영감독은 기술자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빛의 설계자들』은 이 시선을 전복한다. 촬영감독이 단지 카메라를 조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일환으로 공간을 설계하고 인물을 조명하는 설계자임을 증명한다.
7. 책의 구성 및 형식
책은 인터뷰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 작품별 챕터마다 저자가 삽입한 ‘메타 내레이션’이 돋보인다. 질문과 답을 이어가는 단순한 구성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저자의 해석과 통찰이 스며 있다. 마치 영상 위에 자막처럼, 설명이 아니라 ‘해석’을 달아주는 방식이다.
또한 각 장마다 ‘현장 메모’, ‘컷 분석’, ‘빛의 성격’ 같은 요소들이 수록되어 있어, 단순 읽기용 책이 아닌 ‘참조서’로도 활용 가능하다.
8. 결론: 영화의 진짜 설계도를 펼치다
『빛의 설계자들』은 영화의 뒤편에서 묵묵히 빛과 어둠을 다루던 장인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빛을 다룬다는 점에서 사진이나 회화와 닮았고, 시간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문학이나 음악과도 닮아 있다. 결국 영화는 종합예술이며, 그 예술의 무게 중심 한가운데에 바로 ‘촬영감독’이 있다.
이 책은 단순한 헌사도, 기술 매뉴얼도 아니다. 영상 예술을 기록하고, 계승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하나의 고전이다. 영화란 무엇인가, 좋은 장면이란 무엇인가, 촬영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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