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신작, 베니스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드디어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영화 팬들에게는 이미 박찬욱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설레고 기대되는 소식이지만, 이번 베니스의 구도는 단순히 “거장의 귀환” 이상의 복잡성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그와 함께 경쟁하게 될 작품 중 하나가 너무도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튀니지 출신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의 〈보이스 오브 힌드 라잡(The Voice of Hind Rajab)〉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2024년 가자지구에서 실제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6살 소녀 힌드 라잡이 전쟁 속에서 구조를 요청하다 숨진 사건을 그대로 영화화한 것이다. 이처럼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 비극’을 담은 작품이 국제영화제 무대에 등장할 경우, 그 자체로 강력한 울림과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결국 이번 베니스의 주요 경쟁 구도는 “연출력과 영화적 완성도 vs 실화가 주는 정치적·윤리적 치트키”라는 흥미로운 대결로 압축된다.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무게감

칸, 베니스, 베를린은 흔히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린다. 그중 베니스는 ‘가장 오래된 국제 영화제’라는 상징성과 함께, 황금사자상이라는 강력한 권위를 자랑한다. 특히 최근 들어 베니스는 단순히 예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국제 정세와 맞물린 메시지를 가진 영화들에 더 주목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클로에 자오의 〈노매드랜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즉, 이번에도 심사위원단은 영화의 완성도만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가 던지는 사회적 질문, 현재 국제 사회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 그 작품이 전 세계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까지 고려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보이스 오브 힌드 라잡〉은 매우 강력한 우위를 가진다.  

 

〈보이스 오브 힌드 라잡〉의 ‘치트키’

히잡을 쓴 한 소녀가 전화기 너머로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던 그 순간은 이미 뉴스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가슴 아파했다. 영화는 바로 이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다.  

- 실제 사건을 기반 :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비극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 국제 정세와 직결 :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는 여전히 세계 언론의 주요 이슈다.  
- 감정적 압도감 : 픽션보다 더 강력한 울림을 주는 ‘실화’라는 사실이 감상 자체를 바꿔버린다.  

여기에 브래드 피트, 호아킨 피닉스, 알폰소 쿠아론 같은 이름들이 프로듀서 라인업으로 붙어 있다. 단순히 영화계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들이 힘을 실은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언론 보도와 시상식 관심이 자동으로 따라붙는다.  

결국 이 작품은 그 소재와 제작진만으로도 이미 치트키급 경쟁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박찬욱 〈어쩔 수가 없다〉가 가진 무기

그렇다고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밀릴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박찬욱은 이미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올드보이〉), 감독상(〈헤어질 결심〉) 등을 거머쥐며 세계 영화사에 이름을 새긴 거장이다. 그의 강점은 언제나 영화적 장치와 연출의 완벽함이다.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부터가 묘한 울림을 준다. 사회적 상황, 인간관계, 개인의 감정이 겹겹이 쌓여 결국 ‘피할 수 없는 선택’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을 가능성이 크다. 박찬욱 특유의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 그리고 미장센의 완벽한 구성은 세계 어느 영화제에서든 통할 힘을 가진다.  

문제는, 이번에는 단순히 미학적 완성도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보이스 오브 힌드 라잡〉 같은 작품이 있기에, 박찬욱은 연출적 성취에 더해 보편적 울림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라는 과제를 안게 된다.  

연출 vs 소재, 그 미묘한 대결

영화제 심사위원단은 언제나 두 가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1. 순수 영화적 완성도를 중시할 것인가  
2. 사회적·정치적 맥락까지 고려할 것인가  

이번 베니스에서 〈어쩔 수가 없다〉와 〈보이스 오브 힌드 라잡〉은 그 두 극단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찬욱의 영화가 완벽한 연출의 힘을 보여준다면, 힌드 라잡의 이야기는 소재만으로도 강력한 무게감을 준다. 결국 황금사자상이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이번 심사위원단이 “예술”에 방점을 찍을지, 아니면 “현실”에 방점을 찍을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제 언론과 관객 반응 예상

- 국제 언론 : 서구 언론은 이미 팔레스타인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스 오브 힌드 라잡〉에 집중 조명을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동시에 “예술적 성취”에 대한 갈증도 있어, 박찬욱의 신작을 높이 평가할 여지도 있다.  
- 관객 반응 :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실화 기반 영화에 먼저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술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층은 박찬욱의 장인적 연출력에 환호할 가능성이 높다.  
- 수상 예측 : 황금사자상은 힌드 라잡이 가져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박찬욱은 감독상 혹은 심사위원 특별상과 같은 다른 굵직한 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한국 영화계에 주는 의미

만약 박찬욱이 황금사자를 거머쥔다면, 이는 한국 영화사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미 봉준호의 〈기생충〉이 칸 황금종려상을, 윤종빈의 〈범죄와의 전쟁〉, 홍상수, 김기덕 등이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역사가 있지만, 베니스 황금사자는 한국 영화가 아직 차지하지 못한 트로피다.  

반대로 설령 수상에 실패하더라도, 이번 경쟁 구도 자체가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거장 박찬욱 vs 치트키급 실화 영화”라는 헤드라인만으로도 세계 언론은 한국 영화를 주요 담론 속에 위치시킬 것이다.  

결론

이번 베니스는 단순히 영화 경쟁이 아니다.  
- 박찬욱의 〈어쩔 수가 없다〉 : 연출력과 영화적 완성도의 극치.  
- 〈보이스 오브 힌드 라잡〉 : 실화와 정치적 맥락이 주는 치트키.  

이 두 작품의 대결은 “예술이 이길 것인가, 현실이 이길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는 또 한 번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사의 중심에 서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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