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 웃기고 짠내 나는 진짜 감정의 리얼리티
요즘 연애 예능이 넘쳐난다. 하트시그널, 나는 솔로, 체인지 데이즈, 환승연애까지.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연애 경험이 풍부하거나 비주얼이나 사연이 강한 참가자들이 등장해 서로의 마음을 눈치보고, 때로는 밀고 당기며 연애 서사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다른 감정이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연애 경험이 많아 눈빛만 봐도 흐름이 보이는 연애 고수들의 심리전이 아니라, 사랑이 처음이라 더 진심이고 어색한 사람들의 관계. 넷플릭스의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바로 그 틈을 정확히 파고든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 그대로 연애를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모태솔로’들만 출연하는 리얼리티다. 단순히 모솔이라는 설정이 아니라, 이들이 왜 연애를 해보지 못했는지, 어떤 감정을 갖고 살아왔는지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며, 그들이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거절당하기도 하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출연자는 남녀 각각 다섯 명. 이들이 함께 숙소 생활을 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호감을 형성하는 방식은 얼핏 기존 연애 예능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 프로그램이 전개되는 흐름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차이는 ‘티키타카’가 없다. 혹은 없다기보단, 거의 없다.
대부분의 출연자는 어색하고 낯을 가리며 대화를 이어가는 데도 한참이 걸린다. 말수가 적고, 자신이 뭘 느끼는지조차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의 모습은 꽤 오랫동안 화면을 정적이게 만든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은 예상 외로 깊고, 조심스럽다. 이들은 연애의 테크닉이 아니라, 마음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부터 배우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이 있다. 27세 방산연구원 김상호. 연애 경험은커녕 인간관계 자체가 서툴러 보이는 그는 프로그램을 보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의외의 웃음을 선사하는 핵심 인물이다. 연애 프로그램에 나왔지만, 연애는 잘 모르겠고 말 하나하나가 너무 웃긴 사람. 모든 대화가 어딘가 엇나가고, 상황과는 살짝 어긋난 감정선으로 전개되는데 그게 너무나 리얼하고 낯설게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상대 출연자가 질문을 던졌을 때 김상호는 살짝 뜸을 들인 뒤, 문장 구조부터 이상한 방식으로 대답을 시작한다. 말은 논리적인데 뭔가 겉도는 느낌. 감정이 실린 말이 아니라, 마치 머리로 꺼내는 말 같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상대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그의 말은 이미 끝나 있다. 그러다 보니 이 프로그램의 티키타카는 대부분 티키만 있다. 누구도 그를 자연스럽게 받아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해석하고 받아쳐주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스튜디오에서 프로그램을 함께 지켜보는 카더가든이다. 김상호의 말과 행동에 대해 반응하는 그의 멘트들은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재미 포인트다. “김상호씨!!!” “나는 저 사람 모르는 사람입니다.” 같은 말들은 웃음 포인트다. 두 사람의 조합은 썸따위는 없는 세상 속 유일한 케미다. 티키타카의 부재가 프로그램 안에서는 답답함을 만들지만, 스튜디오 밖에서는 이 두 사람 덕분에 오히려 더 풍성한 감상이 완성된다.
이 프로그램이 기존 연애 예능과 확실히 다른 지점은 또 있다. 대부분의 연애 리얼리티는 연출이 많고, 경쟁 구도와 삼각관계를 통해 극적 전개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는 감정을 관찰하는 데 집중한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가 더 예쁘고 잘생겼고, 누가 마지막에 커플이 되는가보다 중요한 건, 한 사람이 처음으로 마음을 느끼는 그 순간이다.
참가자들 각자의 배경과 이야기도 매우 현실적이다. 어떤 이는 외모 콤플렉스로 늘 주눅들어 살아왔고, 어떤 이는 주변에서 ‘연애 좀 해봐라’는 말을 듣고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또 어떤 이는 사랑을 해본 적은 없지만,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늘 품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보던 ‘스펙 좋은 출연자’가 아니라, 옆자리 회사 동료나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커플이 되느냐보다,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심이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용기, 거절을 감당해내는 씁쓸함, 처음으로 누군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순간. 이런 장면 하나하나가 생각보다 더 큰 감정을 만들어낸다.
시청자 반응도 흥미롭다. 연애 예능을 많이 봤던 이들조차 이 프로그램은 뭔가 다르다고 느낀다. 댓글과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 “연애는 모르겠고 김상호 때문에 본다”, “연애 리얼리티인데 인간 다큐를 보는 기분”, “답답한데 또 보고 싶다”는 반응이 많다. 웃음 포인트와 감정선이 묘하게 공존하기 때문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 프로그램이 ‘연애 못 해봤다’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시선이다. 지금껏 연애 경험이 없다는 건, 종종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 시선을 뒤집는다. 사랑을 못 해봤다고 해서, 사랑을 못 하는 게 아니라는 것. 감정이 서툴 뿐,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 그렇게 이들은 서서히, 아주 조금씩 마음을 꺼내 보인다.
감정에 서툴고, 관계가 어색하고, 말이 잘 안 이어져도 괜찮다. 중요한 건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이 프로그램은 그 마음이 어떻게 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답답해하면서도 웃고, 웃으면서도 어느 순간 울컥한다.
넷플릭스가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도 분명하다. 단순한 연애 예능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감정이 처음으로 움직이는 과정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그 감정은 조용하지만 강하고, 서툴지만 진심이다. 사랑이란 건 결국 그런 것이니까.
연애를 시작하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게 마음의 짐처럼 느껴졌던 사람, 그리고 사람의 감정이란 게 뭔지 다시 느껴보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이 프로그램은 특별한 시간을 선사한다.
연애가 아니라 사람을 보는 리얼리티. 그게 바로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다.